문화콘텐츠 - 이야기를 말하다
| 등록자 | 관리자 | 등록일 | 2009-08-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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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텔링 시대에 맞는 새로운 형식의 소통방식에 대한 실험인 ‘그림, 소설을 읽다’라는 주제로 그림과 소설이 만나는 행사가 있었다. 이러한 것은 문학, 음악, 미술 장르간의 경계 없이 서로 자유롭게 넘나들며 소통되던 때가 있었음을 “우리에게 시와 그림의 동일성을 강조하는 시화일치(詩畵一致)의 미학은 결코 낯설지 않다. 우리 문화사에는 문인화의 도도한 전통이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중략) 이러한 평가는 왕유의 그림이 문기(文氣)가 충만하다는 것을 가리키기도 하지만 동시에 시 · 서 · 화(詩·書·畵)를 삼절(三絶)이라 하여 하나의 단위 개념 속에서 파악한 문인화의 인식론적 특성과도 연관된다.”(홍용희, 『아름다운 결핍의 신화』, 천년의 시작, 2004, 38~39쪽.)에서 찾아 볼 수 있다. 또 “우리가 현재 시조라고 부르는 장르는 역사적 존재로서 음악과 문학이라는 예능적 차원에 걸치는 것이기 때문에 어떤 측면에서 거론하더라도 옛 문헌이나 다른 분야들과의 관련성을 도외시할 수 없다.”(조규익, 『가곡창사의 국문학적 본질』, 집문당, 1994, 45쪽.)라는 용어에 관한 논의에서 나타나듯 장르 간 경계지우기가 존재하지 않았던 때를 어렵지 않게 찾아 볼 수 있다.
그러나 어느 사이엔가 이들은 분화되어 담을 높이 쌓아 권위를 높여가기 시작했고 서로 낯설게 되었다. 낯설게 함은 스스로 상상력의 폭을 제한시켜버렸지만 ‘그림, 소설을 읽다’행사는 스토리텔링이 다시 그 경계의 벽을 허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의미 있는 일이었다. 디지털 매체인 인터넷 또한 시 · 서 · 화(詩·書·畵)의 경계를 허물 수 있는 유일한 매체가 되고 있다. “같은 작품을 놓고 문학가와 미술가가 만난 까닭은 매체의 성격 때문이다. 디지털 방식은 모든 정보를 0과 l, 전자의 꺼짐과 켜짐으로 조합되기 때문에 표준화가 쉽다. 색 · 소리 · 문자 등이 동등한 상황으로 섞일 수 있어서 소위 멀티미디어가 쉽게 된다. 통합적 성격 때문에 이제 디지털 매체는 문학 · 음악 · 미술과 서로 밀접한 연관을 지니며 발전”(최혜실, 「디지털 기술 발전과 문학」,『디지털 시대의 영상문화』, 소명출판, 2003, 280쪽.)해 왔기 때문이다.
이러한 디지털 매체를 이용한 인터넷의 정보는 끊임없이 업그레이드되는 속성이 있다. 어제 있었던 사이트가 오늘 가보면 없고 어제 게시판에 올라 있던 글이 오늘 가보면 삭제되어 사라지고 말기 때문이다. 이는 경계 중첩하기 또는 경계를 무너뜨리면서 중심이 주변부가 되고 주변부가 중심이 되는 이동을 가능하게 했다. 이 이동성은 사각의 모니터 속에서 움직이는 이미지가 되었으며 사각의 이미지 속에는 실제가 휘발 되고 없는 가상의 중심이 되기도 한다.
가상의 중심은 “텍스트의 저자는 지식의 창안자이자 전달자로서의 지위를 잃어버린다. 독자가 현재 읽고 있는 텍스트는 하이퍼텍스트 상에서 일시적인 중심에 불과하다. 그것은 지금 이 자리에 있는 독자에 의한 중심이며 독자의 취향과 의도에 따라 취사선택되는 가상의 중심이다. 독자는 지금까지 자신의 지식과 가치관에 따라 여기저기로 옮겨 다니면서 새로운 중심을 엮어”(최혜실, 「문자, 영상, 디지털 리터러시」,『디지털 시대의 영상문화』, 소명출판, 2003, 243쪽.)내고 있다. “여기저기로 옮겨 다니면서 새로운 중심을 엮어”낸다는 것은 참된 의미와 가치기준이 모호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 한다.
이러한 것들은 끊임없이 새로운 중심을 만들기를 하지만 또한 사라지기도 한다.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면서 중심을 이동시키고 있으며 중심의 이동은 절대적인 영토가 탈영토화 해 가는 과정이다. 중심의 이동은 농경사회의 정착생활이 아니라 끊임없이 이동하는 유목민의 생활과도 닮아있다. 중심의 탈영토화는 “어떤 것도 결코 단독으로 탈영토화하지 못하며, 항상 적어도 두 항(項)이 존재한다. 즉 손-사용대상, 입-가슴, 얼굴-풍경이 그것이다. 그리고 두 항의 각각은 상대 항 위에 재영토화 된다. 그로부터 손과 도구, 입과 가슴, 얼굴과 풍경사이에 수평적이고 보완적인 재영토화의 체계 전체가 나타난다.”(이경진, 『노마디즘2』, 휴머니스트, 2002, 171쪽.) 이렇게 절대적 영토에서 탈영토화로 가는 길에는 수평적이고 보완적인 체계전체의 관계망도 형성되지만 경계 중첩하기와 경계 허물기로 재영토화 해가는 과정에서 중심이 흔들리거나 상실되기도 한다.
절대적인 영토가 탈영토화 되고 다시 재영토화하는 과정에서 디지털 스토리텔링은 경계 중첩하기와 경계 허물기로 끊임없는 가상의 중심을 만들어 내면서 중심을 흔들리게 하거나 상실되게 하여 가치기준이 모호한 ‘시뮬라시옹’(simulation; 모사, 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하는 것처럼 만들어놓아 실제와 가상이 혼란스러워진 상황) 리얼리티 세계로 우리를 끌고 들어간다. 이러한 탈영토화 되고 탈 중심인 ‘시뮬라시옹’ 리얼리티는 경계의 해체로 이어져 인간의 정체성(identity)을 상실하게 한다. 하지만 인간이 인간다울 수 있는 고유한 가치에 집중시킬 가치와 이력을 가지고 자신의 정체성을 지켜 중심을 회복할 수 있는 복원력이 마저 상실하면 안 된다.
‘시뮬라시옹’ 리얼리티는 “원천이나 실재 없는 실재적인 모형들에 의해 만들어진 모사의 세계를 말한다. ‘시뮬라시옹’에 의한 과잉현실(hyperrear)”(John Story, 박만준 옮김, 『대중문화와 문화연구』경문사, 2002, 217쪽)’ 세계에 몰입되어 잃어가고 있는 우리의 정체성을 조선시대 남성 중심 사회에서 비천한 계급인 기녀로 살다 갔지만 삶의 절개를 지키려고 노력한 매창의 삶, 그녀가 추구했던 이상세계, 끝까지 중심을 잃지 않고 살다간 매창의 삶을 통해 그 의미를 찾아보도록 하겠다.
/ 황인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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